2013. 8. 23. 15:55ㆍ■ Cantabile/공감^^ 길
아이들은 저마다 '마법의 콩'을 갖고 있다.
자식을 키우면서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죄는 자식을 믿지 않는 것이다. 마음에 안 들어도 내가 부끄럽지 않게 살면서 기다려준다면, 아이들은『잭과 콩나무』속 잭처럼 나도 모르게 나의 보물들을 훔쳐갈 것이다. 어른들 보기에 미숙해도 아이들은 저마다 마법의 콩을 가지고 있다.
우리 아들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매년 선거에 나갔다. 5학년 때는 부학생회장에, 6학년 때에는 학생 회장에 출마했다가 모두 떨어졌다.
내심 나는 아들이 '지도자'가 되는 것을 반가워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남 앞에 서는 것에 중독되면 인간관계에 서툴러지고 평생 '가짜 자신'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뻔히 알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내내 범생이로 지내던 녀석이 중학교를 가더니 확 바뀌었다. 한여름의 뙤약볕 아래에서도 하루에 두 시간씩은 '욕도 할 줄 아는' 친구들과 공을 차고 다녔다. 하지만 내가 되도록 아들에게만큼은 잔소리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된 데에는 『잭과 콩나무』라는 영국 이야기 덕이 컸다. 이 이야기는 그 어떤 자녀 교육서보다도 깊은 가르침을 준다.
『잭과 콩나무』의 주인공 가족은 단출하다. 과부 어머니와 게으르고 우둔한 잭뿐이다. 수입이라고는 아침마다 '밀키화이트'라는 암소에게서 짜는 우유 한 통이 전부였다. 그리고 어느 날 밀키화이트의 젖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 심리학자들은 이 순간을 '유아기의 종말'로 이해한다. 잭이 이제 새로운 성장의 단계에 진입한 것이다.
당돌하게도 잭은 시장에 가서 암소를 팔아 오겠다고 나선다. 젖소의 고삐를 쥐고 집을 나섰지만 얼마 못 가서 잭은 웬 노인을 만난다. 그리고 암소와 '마법의 콩' 몇 알을 기쁘게 교환한다. 잭은 '마법의 콩'이라는 성장의 가능성을 들고 집에 돌아오지만, 어머니는 아들을 믿지 않는다.
어머니는 암소를 얼마에 팔았느냐고 채근한다. 잭은 들떠서 자랑스레 콩을 들이밀었지만 어머니는 콩을 창밖으로 던진다. 그리고 아들에게 저녁을 굶긴다.
잭의 어머니는 자신의 입장에서 아들을 바라본다. "우리 집안의 아들이니, 너는 무엇이 될 수 있을 거야. 아니, 무엇이 되어야 해." 어머니는 자신의 계산은 빈틈이 없고 아들에게도 유익하다고 믿는다. 잭의 엄마처럼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들을 있는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믿어주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아들은 아들대로 자신이 믿는 것을 내보인다. 마법의 콩 다섯 알. 상식을 지닌 어머니들은 '마법'을 믿지 않는다. 아들이 자랑스럽게 내민 성장의 가능성을 어머니는 모욕한다. 하지만 햇볕도 없는 데서 스스로 싹이 트듯 어린이들은 내면에 위대한 성장의 힘을 감추고 있다.
어른들은 자신이 믿는 대로 함부로 햇볕을 들이민다. 하지만 아이들이 '혼자의 힘'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잠시 '나의 빛'을 거두고 기다려야 한다.
용기 있는 아이들의 성장 여행
아침에 일어난 잭은 노인의 말처럼 하늘까지 자란 콩나무를 보고 환호성을 지른다. 거대한 콩나무는 어린이들이 꿈꾸는 완벽하고 거대한 성장의 판타지이다.
잭은 콩나무를 타고 세 번이나 하늘에 올라 식인귀 거인이 사는 집에 들어간다. 잭은 거인의 황금과 황금알을 낳는 닭과 스스로 연주하는 하프를 훔쳐서 돌아온다.
옛이야기에서 '도덕성'은 자주 문제가 된다. 나무꾼은 선녀의 옷을 훔치고, 빨간 모자는 할머니의 죽음을 방조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범죄를 가르치는 것이니 좋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보기엔 도덕 강박증에 가깝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예쁜 공주가 계집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존재'인 것처럼, 그래서 외모 콤플렉스를 조장한다는 정치적으로 정당한 비평이 때로는 과민한 반응일 수 있는 것처럼, 옛이야기에서 도둑질은 왜소하고 유약한 어린이들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변화의 방식'일 뿐이다.
잭의 눈에 비친 식인귀 거인은 어린이들의 눈에 비친 어른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아무 데서나 명령하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어린이들은 그런 아버지를 선망하면서도 두려워한다.
이런 어린이들에게 실은 아버지가 거대한 저택에 살 수 있는 까닭이 특별한 보물들 때문이라고 말해주면, 아이들은 납득하고 성장의 길에 용기 있게 나설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잭은 황금과 황금알을 낳는 닭과 스스로 연주하는 하프를 차례로 훔친다.
『잭과 콩나무』는 게으르고 어리석은 우리의 아이들에게 무엇을 욕망하면 좋을지 넌지시 말해주는 것이다.
『잭과 콩나무』는…
영국의 옛이야기이다. 1807년에 벤저민 타바트가 출판한 것과 1890년에 조셉 제이콥스가 출판한 것이 대표적이다. 꼬마와 거인의 싸움 이야기는 연원이 깊은데, 『다윗과 골리앗』이 원조격이라 할 수 있다. 잭이 콩나무를 타고 가서 거인의 보물들을 훔쳐오는 것에서, 거대한 식민지로 쳐들어가는 영국 자본가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정원 교수는…
옛 소설에 매혹당한 서사 여행자. 서강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저서로 베스트셀러 『전(傳)을 범하다』 『조선시대 책의 문화사』(공저)가 있다. 그를 통해 『춘향전』 『심청전』 등 고전 소설에서부터 『헨젤과 그레텔』 『신데렐라』처럼 익숙한 서양 동화를 새롭게 이해하고 다시 음미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기획_지희진 사진_여성중앙 글_이정원(경기대 국문과 교수)
여성중앙 2013 7월호
별바라기 생각^^----------------------------------------------------------------
마법의 콩 다섯 알. 상식을 지닌 어머니들은 '마법'을 믿지 않는다. 아들이 자랑스럽게 내민 성장의 가능성을 어머니는 모욕한다. 하지만 햇볕도 없는 데서 스스로 싹이 트듯 어린이들은 내면에 위대한 성장의 힘을 감추고 있다.
어른들은 자신이 믿는 대로 함부로 햇볕을 들이민다. 하지만 아이들이 '혼자의 힘'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잠시 '나의 빛'을 거두고 기다려야 한다.
아!!
마법의 콩!
아이 손에 들린 마법의 콩 다섯 알을 나도 그렇게 무심코 버렸구나!
나의 상식으로......
또 하나를 알아가며 긍정의 힘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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